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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1987를 보고

열공달 2018. 3. 22. 20:44

 이야기는 과거에서 시작한다. 아, 물론 1987년의 이야기말고 나의 이야기.

예전의 나는 인간을 행동하는 자와 행동하지 않는 자로 구분했다. 왜 그랬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나는 나를 행동하지 않는자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선을 그어놓고 경계 너머의 저 세상을 동경했던 것인지 나의 고상함에 취해 경계를 고수했던 것인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게으르고 무딘 사람이었다는 기억만 확실하다.

아, 물론 이것도 현재의 이야기. 다만 약간의 다른 게으름이랄까.

과거의 게으름은 마치 대낮의 거리를 쏘다니는 길고양이의 한가로운 게으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어느 시골 대장간 구석에 먼지가 수북히 쌓인 오래된 망치의 게으름이었다.

 

 본디 망치는 스스로 게으를 수 없다. 망치의 게으름은 대장장이에게 달려있다. 먼지가 수북히 쌓인 망치가 있다면 그것은 망치의 삶의 태도인가, 대장장이의 삶의 태도인가. 분명 대장장이의 삶의 태도다. 그러나 나는 망치의 삶을 말하고 싶다. 그 어느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망치의 삶. 삶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없지만 탄생에서 소멸까지 그것은 열심히 노력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게으르고 싶어도 게으를 수 없다. 망치는 사물이자 도구이기 때문이다. 망치는 스스로 행동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망치는 하나의 변명이 되었다. 변명은 때로 수치를 몰고왔지만, 그것들은 대채로 버틸만한 것들이었다. 나는 망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어. 이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은 나에게 없어.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에서 힘은 내가 아니라 다른 특별한 사람들로부터 나와. 어느 순간 대장장이들도 스스로를 망치라고 말하길 시작했다. 변명은 생각보다 쉽다. 다만 스스로가 망치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대장간안의 먼지 속으로 숨어들어갈 때, 부끄러운 몸뚱아리를 숨기려고 먼지를 한움큼 움켜잡았을 때, 먼지를 향해 뻗은 손이 스스로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는 모순과 맞주쳤을 때, 그때의 처절함이란.

 

 1987년, 그 해는 서울대생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고 전두환이 호헌조치를 했으며, 6월 민주항쟁으로 주권을 쟁취해낸 해였다. 국가는 거리에서 최루탄을 쏴댔으며 무차별적으로 시민들을 탐문하며 폭행하고 연행했다. 무자비한 대통령, 그가 이끄는 정권이 짓밟고 무시했던 국민들은 그들의 바람과 다르게 단순한 망치도 말잘듣는 개도 아니었다. 시민 모두가 독재와 탄압에 맞서 행동하는 자는 아니었지만, 어떤 이는 행동했다. 어려운 일이었다.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너무 뻔한 말이지만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모두 그들의 용기있는 말과 행동들 덕이라는 것. 단지 그들을 '그들'이라는 대명사로 묶어 미안함을 전할 수 밖에 없는 내가 부끄러울 따름이다.

 

 2018년, 1987년보다 많이 좋아진 세상, 하지만 여전히 주위에 망치라는 변명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이들이 보인다. 어느 면으로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살기가 더 않좋아졌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니 한가지 바람이 있다.

세상의 숨은 망치들이 달그락거리길,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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